대학원 생활에서 가장 흔한 경로는 이렇습니다. 봄에 국내 학회에서 포스터를 걸고, 여름에 학술대회 논문집에 짧은 논문을 싣고, 겨울에 같은 주제를 확장해 KCI 등재지에 투고합니다. 그런데 투고 직전에 누군가 한마디를 던집니다. “그거 중복 게재 아니야?” 그 순간 이미 써 둔 원고가 통째로 위험해 보이기 시작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학회 발표를 학술지 논문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학계가 정상적인 연구 과정으로 인정하는 경로입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발전이 없는데 발전한 척하는 경우, 그리고 앞선 발표가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는 경우입니다. 이 글은 어떤 규범이 어느 층위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지 정리하고, 발표 형태별로 판단 기준을 나눈 다음, 투고할 때 반드시 해야 할 고지 세 가지를 안내합니다.
훈령이 금지하는 것은 ‘부당한’ 중복게재다
교육부 훈령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2조 제1항 제5호는 부당한 중복게재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연구자가 자신의 이전 연구결과와 동일 또는 실질적으로 유사한 저작물을 출처표시 없이 게재한 후, 연구비를 수령하거나 별도의 연구업적으로 인정받는 경우 등 부당한 이익을 얻는 행위.”
이 한 문장에 조건이 세 개 들어 있다는 점을 눈여겨보십시오.
- 동일하거나 실질적으로 유사할 것. 실질적인 확장이 있으면 이 조건부터 성립하지 않습니다.
- 출처표시가 없을 것. 앞선 발표를 밝히고 인용했다면 이 조건이 깨집니다. 실무에서 가장 결정적인 갈림길입니다.
- 부당한 이익을 얻을 것. 같은 성과를 두 번 실적으로 계상하거나 두 번 연구비를 수령하는 경우가 여기 해당합니다.
즉 훈령 층위에서 보면, 확장한 내용을 앞선 발표를 밝히고 실으면서 실적을 이중으로 계상하지 않는다면 부당한 중복게재의 구성 요건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자기 이전 저작물을 다루는 규범 전반은 자기 표절과 중복 게재의 정의·사례에 더 넓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발표 형태에 따라 판단이 갈린다
“학회에서 발표했다”는 말 아래에 성격이 아주 다른 세 가지가 섞여 있습니다. 자기 사례가 어디에 해당하는지부터 확정해야 합니다.
1. 초록 또는 포스터만 낸 경우
초록집에 한 쪽짜리 요약만 실렸고 전문이 공개되지 않았다면, 대부분의 학술지는 이를 선행 게재로 보지 않습니다. 국제 의학 학술지에서도 학회 초록은 통상 예외로 다룹니다. 다만 초록집이 온라인에 전문 공개되었는지는 확인해야 하고, 투고 시 발표 사실을 밝히는 것은 여전히 권장됩니다.
2. 구두 발표만 하고 논문집에는 실리지 않은 경우
발표 자체는 출판이 아닙니다. 논문집에 수록되지 않았다면 재투고에 제약이 거의 없습니다. 이 경우에도 감사의 글이나 각주에 “본 연구의 일부는 OO학회 2026년 춘계학술대회에서 발표되었다”는 한 문장을 넣는 것이 관례입니다.
3. 학술대회 논문집에 정식 논문으로 실린 경우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판단이 필요합니다. 논문집 수록본은 이미 공표된 저작물이고, 학회에 따라 저작권 양도까지 이루어집니다. 그대로 학술지에 내면 명백한 중복 게재이며, 확장해서 낼 때는 얼마나 확장했는지가 쟁점이 됩니다.

같은 “학회 발표”라도 어떤 형태였는지에 따라 다음 단계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확장 요건은 학회와 저널이 정한다 — 국가 기준이 아니다
여기서 층위를 반드시 구분해야 합니다. “몇 퍼센트 이상 새로워야 한다”는 수치 기준은 교육부 훈령에도 KCI 규정에도 없습니다. 그 숫자는 개별 학회와 학술지가 자기 투고 규정에 써 놓은 것입니다. 실제로 널리 인용되는 기준들은 이렇게 갈립니다.
- ACM. 이전 학술대회 논문을 확장한 저널 투고는 학술대회본을 넘어서는 새로운 내용이 최소 25% 포함되어야 한다고 정합니다.
- IEEE. 통상 30% 안팎이 관행처럼 언급되지만, 산하 소사이어티마다 기준이 다릅니다. IEEE Power & Energy Society는 60% 이상을 요구하고, 일부 IEEE Communications Society 저널은 수치를 두지 않고 편집위원회의 판단에 맡깁니다.
- IEEE Control Society. 이 경우를 자기표절로 보아, 인용 표기를 했더라도 허용하지 않는 입장을 취합니다.
- 국내 학회. 학회마다 규정이 제각각입니다. 확장 게재를 명시적으로 허용하는 곳도 있고, 논문집 수록본의 재투고를 전면 금지하는 곳도 있습니다.
따라서 “보통 30%면 된다더라”는 말을 근거로 삼으면 안 됩니다. 1차 근거는 투고하려는 학술지의 투고규정과 발표했던 학회의 저작권 정책 두 문서입니다. 이 두 문서를 열어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원고를 다듬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일입니다. 저널 선택과 투고 절차 전반은 학술지 논문 투고 방법 7단계 튜토리얼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 문서를 찾는 순서도 정해 두면 편합니다. 학술지 쪽은 학회 홈페이지의 논문투고 안내나 온라인 투고 시스템 첫 화면에 걸린 투고규정 파일을 열고, “중복”, “이중”, “선행 발표”, “확장” 같은 낱말로 본문 검색을 합니다. 조항이 없는 학술지도 적지 않은데, 그럴 때는 연구윤리 규정 파일을 한 번 더 열어 보고, 그래도 없으면 편집간사에게 메일로 묻는 것이 정답입니다. 메일로 받은 회신은 나중에 그 자체로 근거 자료가 됩니다. 학회 쪽은 학술대회 논문 투고 시 동의한 저작권 이양 동의서를 다시 찾아봅니다. 저작권이 학회에 넘어간 경우에는 학술지 투고 전에 학회의 사용 허락을 별도로 받아야 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확장’을 만드는 다섯 가지 방법
확장은 분량을 늘리는 일이 아닙니다. 문장을 풀어 쓰고 서론을 두 배로 만드는 방식으로는 어떤 심사위원도 설득하지 못합니다. 실질적 기여를 더하는 방향은 대체로 다섯 가지입니다.
- 데이터를 추가한다. 표본을 늘리거나 새로운 대상 집단, 새로운 기간을 넣습니다. 가장 명확하고 방어하기 쉬운 확장입니다.
- 분석을 확장한다. 학회본에서 기술통계와 단순 비교만 제시했다면, 저널본에서 매개·조절 효과나 하위집단 분석, 강건성 검증을 더합니다.
- 이론적 틀을 세운다. 학회본에서 얇게 지나간 이론적 배경을 제대로 구축하고, 가설을 명시적으로 도출합니다.
- 비교 대상을 넣는다. 공학·정보 분야라면 기존 방법과의 정량적 비교, 추가 벤치마크, 파라미터 민감도 분석을 더합니다.
- 논의를 깊게 만든다. 한계와 반대 해석을 정직하게 다루고 후속 연구 방향을 구체화합니다. 다만 이것만으로는 확장으로 인정받기 어렵고, 앞의 네 가지 중 하나 이상과 함께 가야 합니다.
반대로 확장으로 인정되지 않는 것도 분명합니다. 같은 결과를 다른 그래프로 다시 그리는 것, 서론과 결론만 새로 쓰는 것, 같은 데이터를 조각내어 여러 편으로 나누는 이른바 살라미 출판이 여기 해당합니다. 자기 선행 연구를 필요 이상으로 끌어다 쓰는 문제는 과잉 자기인용과 인용 담합에서 따로 다룹니다.

확장은 분량이 아니라 새로 더해진 기여의 크기로 판단됩니다.
투고할 때 반드시 해야 하는 세 가지 고지
확장 요건을 충족했다면 남은 일은 숨기지 않는 것입니다. 세 곳에 각각 남겨야 하고, 하나라도 빠지면 나중에 문제가 됩니다.
- 원고 안의 고지. 첫 쪽 각주나 서론 말미, 또는 방법 절 첫 문단에 “본 논문의 예비적 결과는 OO학회 2026년 춘계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바 있다”는 문장을 넣습니다. 어느 학회, 어느 회차인지 특정해야 합니다.
- 참고문헌 인용. 학술대회 논문집에 수록된 판본은 참고문헌에 정식으로 올리고 본문에서 인용합니다. 학회 발표문과 프로시딩의 표기 형식은 학위논문·학회 발표문 인용법에 APA와 KCI 기준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 커버레터의 설명. 편집자에게 보내는 커버레터에 어떤 부분이 학회본과 겹치고 무엇이 새로 추가되었는지를 항목으로 적습니다. 표로 정리해 첨부하면 심사 과정이 훨씬 매끄럽습니다.
세 번째가 특히 중요합니다. 편집자가 스스로 겹침을 발견하는 것과, 저자가 먼저 밝히고 설명하는 것은 결과가 전혀 다릅니다.
겹치는 문단은 저자가 먼저 표시해 둔다
확장 게재에서 실무적으로 가장 유용한 습관은 원고 작업을 시작할 때 겹침 지도를 먼저 만드는 것입니다. 방법은 단순합니다. 학회본과 저널 초고를 나란히 두고, 저널 초고의 각 문단에 세 가지 표시 중 하나를 붙입니다. 그대로 가져온 문단, 손질해서 가져온 문단, 완전히 새로 쓴 문단입니다. 이 표시를 원고 사본에 남긴 채 작업하면 세 가지가 한꺼번에 해결됩니다.
- 확장의 크기를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새로 쓴 문단이 전체의 몇 분의 몇인지 눈으로 확인되므로, 투고규정의 기준을 충족하는지 감이 아니라 근거로 판단하게 됩니다.
- 커버레터가 저절로 만들어집니다. “새로 추가된 부분”에 붙인 표시를 그대로 옮기면 편집자에게 낼 요약표가 됩니다.
- 방법 절의 서술이 정확해집니다. 학회본과 같은 데이터를 쓴 구간과 새 데이터를 쓴 구간이 구분되어야 결과 해석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대로 가져온 문단을 표현만 바꿔 표시를 지우는 것은 확장이 아닙니다. 표시를 지우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표시가 붙은 자리에 무엇을 더할지 결정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방법 절처럼 성격상 같은 서술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간은 억지로 바꿔 쓰기보다 학회본을 인용하고 요약하는 편이 정직합니다.
학위논문을 학술지에 내는 경우는 별개다
자주 함께 묻는 질문이라 짚어 둡니다. 자신의 석사·박사 학위논문 내용을 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은 대부분의 국내 학회와 학술지가 명시적으로 허용하고, 오히려 권장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학위논문은 학술지 출판을 위한 심사 과정을 거치지 않은 문서이고, 유통 경로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만 두 가지는 지켜야 합니다. 학위논문에서 파생되었다는 사실을 각주로 밝히는 것, 그리고 투고하려는 학술지가 이를 허용하는지 투고규정에서 확인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규범의 층위는 학회와 학술지입니다.
투고 전 판단 체크리스트
- 앞선 발표가 초록·포스터·구두발표·논문집 수록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확정했는가.
- 학회의 저작권 정책 문서를 열어 저작권 양도 여부를 확인했는가.
- 투고하려는 학술지의 투고규정에서 선행 발표 처리 조항을 찾아 읽었는가.
- 새로 추가된 데이터·분석·이론이 무엇인지 항목으로 적을 수 있는가.
- 학회본에서 그대로 가져온 문단이 어디인지 표시해 두었는가.
- 원고 각주, 참고문헌, 커버레터 세 곳에 고지를 넣었는가.
- 같은 성과를 두 번 실적으로 올리지 않도록 정리했는가.
마지막 두 항목이 훈령의 세 가지 요건 중 뒤의 둘에 정확히 대응합니다. 검사 도구로 자기 원고와 학회본의 겹침 구간을 미리 확인해 두면, 커버레터에 쓸 항목이 자연스럽게 정리됩니다. 전반적인 절차는 학위논문 표절 검사 완전 가이드를 참고하십시오.
자주 묻는 질문
학회 포스터로 발표한 내용을 학술지에 내면 중복 게재인가요
대부분의 경우 아닙니다. 초록이나 포스터만 공개되고 전문이 출판되지 않았다면 선행 게재로 보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다만 초록집이 온라인에 전문 공개되었는지 확인하고, 투고 시 발표 사실을 각주로 밝히는 것이 안전합니다.
몇 퍼센트를 새로 써야 확장 게재로 인정되나요
국가 차원의 수치 기준은 없습니다. ACM은 25% 이상 새로운 내용을 요구하고, IEEE는 통상 30% 안팎이 관행으로 언급되지만 소사이어티마다 다릅니다. IEEE Power & Energy Society는 60% 이상을, 일부 저널은 수치 없이 편집위원회 판단을 적용합니다. 기준은 투고하려는 학술지의 투고규정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학회본을 참고문헌에 인용하면 문제가 없어지나요
인용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훈령의 부당한 중복게재는 출처표시 없음, 실질적 유사성, 부당한 이익 세 요소로 구성되므로, 인용을 해도 확장이 없고 실적을 이중 계상하면 여전히 문제가 됩니다. 일부 IEEE 소사이어티는 인용을 해도 확장 게재 자체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석사 학위논문을 학술지에 내도 되나요
대부분의 국내 학술지가 허용하며 권장하기도 합니다. 학위논문에서 파생되었다는 사실을 각주로 밝히고, 투고하려는 학술지의 투고규정에서 허용 여부를 확인하십시오.
같은 데이터로 논문 두 편을 나눠 써도 되나요
연구 질문과 분석이 실질적으로 다르면 가능하지만, 하나의 연구를 인위적으로 쪼개는 살라미 출판은 부당한 중복게재로 다뤄집니다. 두 편이 서로를 인용하고, 각각이 독립된 기여를 갖는지 스스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학회 발표 후 몇 달 안에 내야 한다는 규정이 있나요
일반적인 기한 규정은 없습니다. 다만 학회에 따라 논문집 수록본의 저작권 이양 동의서에 재사용 조건을 기간과 함께 적어 두는 경우가 있고, 분야에 따라 결과의 시의성이 빠르게 떨어지기도 합니다. 기한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동안 확장이 실제로 이루어졌는지입니다.
공동 발표였는데 저널본은 저 혼자 써도 되나요
학회본의 공저자를 저널본에서 빼려면 그 사실을 사전에 합의해야 합니다. 훈령 제12조 제1항 제4호는 기여가 있는데도 저자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 것을 부당한 저자 표시로 규정합니다. 학회본에서의 기여가 저널본에도 남아 있다면 저자로 유지하고, 남아 있지 않다면 그 사정을 공저자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받은 뒤 진행하십시오.
제출 전 독창성 자가 점검
확장 게재에서 가장 흔한 실수는 학회본의 문단이 어디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지 저자 본인도 모르는 상태로 투고하는 것입니다. Tesify 표절 검사기로 저널 원고와 학회본을 함께 점검하면 겹치는 구간이 문장 단위로 표시되므로, 어디를 다시 쓸지와 커버레터에 무엇을 적을지를 근거를 갖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점수를 낮추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겹침을 정확히 파악해 정직하게 고지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Tesify 표절 검사기로 학회본과의 겹침 구간 확인하기 — 무료로 가입한 뒤 저널 원고를 올리고, 표시된 구간을 커버레터 항목으로 정리해 보십시오.
정리
학회 발표를 학술지 논문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정상적인 연구 경로입니다. 교육부 훈령이 금지하는 것은 ‘부당한’ 중복게재이고, 그 요건은 실질적 유사성과 출처표시 없음과 부당한 이익 세 가지가 겹칠 때 성립합니다. 확장 비율의 수치는 국가 규범이 아니라 학회와 학술지가 정하므로, 투고규정과 저작권 정책 두 문서가 언제나 1차 근거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 앞선 발표를 각주와 참고문헌과 커버레터 세 곳에 밝히십시오. 숨기지 않은 확장은 연구의 발전이고, 숨긴 확장은 부정행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