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국문학, 사학, 철학, 종교학 전공 대학원생이 처음 논문을 쓸 때 가장 크게 부딪히는 벽이 있습니다. 학부에서 배운 APA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문학 논문에는 괄호 안 (홍길동, 2023)이 거의 없습니다. 대신 페이지 아래 각주가 빼곡히 달려 있고, 논문 끝에는 그와 형식이 다른 참고문헌 목록이 따로 붙습니다.
이것이 시카고 노트 방식, 정확히는 시카고 양식의 두 체계 중 「주석-참고문헌」 체계입니다. 국내 인문학 학술지와 학위논문 상당수가 이 체계를 변형해 씁니다. 이 글은 그 구조를 원리부터 설명하고, 각주와 참고문헌이 왜 형식이 다른지, 국문 문헌에는 어떻게 적용하는지를 잘못된 예와 올바른 예로 정리합니다.
시카고에는 체계가 둘이다
먼저 용어를 정리해야 합니다. 「시카고 양식」이라는 하나의 규칙은 없습니다. The Chicago Manual of Style은 서로 다른 두 체계를 제시합니다.
- 주석-참고문헌 체계: 각주나 미주로 출처를 밝히고, 끝에 참고문헌 목록을 붙입니다. 문학·역사·예술 등 인문학이 씁니다.
- 저자-연도 체계: 본문 괄호에 저자와 연도를 적습니다. 자연과학·사회과학이 씁니다. APA와 겉모습이 비슷합니다.
지도교수가 「시카고로 쓰라」고 했다면 인문계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앞의 것을 뜻합니다. 이 글도 그 체계만 다룹니다.
인문학이 각주를 쓰는 이유는 관행 때문만이 아닙니다. 인문학 논문은 출처 표시와 함께 보충 설명·이견 소개·원문 병기를 자주 해야 하는데, 괄호 안 저자-연도로는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각주는 출처와 논평을 같은 자리에 담을 수 있는 유일한 장치입니다.
각주와 참고문헌은 형식이 다르다
이 체계에서 가장 많이 틀리는 지점이자, 이해하면 나머지가 다 풀리는 지점입니다. 같은 문헌이라도 각주에 적을 때와 참고문헌에 적을 때 형식이 다릅니다. 대충 비슷한 것이 아니라 규칙적으로 다릅니다.
| 구분 | 각주 | 참고문헌 |
|---|---|---|
| 저자명 순서 | 이름 성 (자연스러운 순서) | 성, 이름 (정렬용 도치) |
| 요소 구분 | 쉼표 | 마침표 |
| 출판 정보 | 괄호 안 | 괄호 없이 |
| 쪽수 | 인용한 특정 쪽 | 논문이면 전체 범위, 책이면 생략 |
| 배열 | 본문 등장 순서 | 가나다·알파벳순 |
영문 단행본으로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각주: 1. Peter Burke, What Is Cultural History? (Polity Press, 2019), 47.
참고문헌: Burke, Peter. What Is Cultural History? Polity Press, 2019.
학술지 논문이면 이렇습니다.
각주: 2. Jane Smith, “Reading the Archive,” Journal of Modern History 91, no. 2 (2019): 215.
참고문헌: Smith, Jane. “Reading the Archive.” Journal of Modern History 91, no. 2 (2019): 210–238.
마지막 줄의 쪽수를 보십시오. 각주는 실제로 인용한 215쪽이고, 참고문헌은 논문 전체 범위 210–238쪽입니다. 이 둘을 같게 적는 것이 가장 흔한 오류입니다.

완전 각주와 축약 각주
같은 문헌을 논문에서 열 번 인용한다고 열 번 모두 전체 서지를 적지는 않습니다. 처음 한 번만 완전한 형태로 적고, 이후에는 축약형을 씁니다.
완전 각주(첫 인용): 3. Peter Burke, What Is Cultural History? (Polity Press, 2019), 47.
축약 각주(이후): 7. Burke, Cultural History, 112.
축약형의 구성은 성 + 짧게 줄인 제목 + 쪽수입니다. 제목이 짧으면 그대로 두고, 길면 핵심 단어만 남깁니다. 출판사와 연도는 넣지 않습니다.
국문 문헌도 같은 원리로 줄입니다.
완전 각주: 3. 홍길동, 『조선 후기 향촌 사회 연구』(서울: 한국사연구원, 2021), 88쪽.
축약 각주: 7. 홍길동, 『향촌 사회 연구』, 112쪽.
상게서·전게서·ibid.는 어떻게 하나
여기서 실무적으로 중요한 변화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바로 앞 각주와 같은 문헌일 때 ibid.(같은 책), 앞에서 인용한 문헌일 때 op. cit.(전게서)를 썼습니다. 국문 논문에서는 「상게서」와 「전게서」가 이에 해당했습니다.
현재 시카고 양식은 ibid.를 권장하지 않고 축약 각주를 쓰도록 안내합니다. 이유는 실용적입니다. 편집 과정에서 각주 하나를 삽입하거나 삭제하면 ibid.가 엉뚱한 문헌을 가리키게 되기 때문입니다. 축약 각주는 그런 사고가 없습니다.
권장하지 않는 예: 8. 상게서, 115쪽.
권장하는 예: 8. 홍길동, 『향촌 사회 연구』, 115쪽.
다만 국내 인문학 학술지 중에는 여전히 상게서·전게서를 요구하는 곳이 있습니다. 투고 규정이 우선이며, 학위논문이라면 학과 지침을 확인하십시오. 어느 쪽을 택하든 논문 전체에서 하나로 통일해야 합니다.

국문 문헌의 낫표 용법
국내 인문학 논문에서 시카고 방식을 쓸 때 영문 규칙을 그대로 옮길 수 없는 지점이 있습니다. 기울임과 따옴표입니다. 한글은 기울여 써도 잘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국문 인문학은 낫표를 씁니다.
- 겹낫표 『 』: 단행본, 학술지, 신문 등 독립된 출판물의 제목에 씁니다. 영문의 기울임에 해당합니다.
- 홑낫표 「 」: 학술지 논문, 단행본의 한 장, 시 한 편 등 더 큰 것 안에 담긴 글의 제목에 씁니다. 영문의 따옴표에 해당합니다.
잘못된 예: 홍길동, 「조선 후기 향촌 사회 연구」(한국사연구원, 2021).
올바른 예: 홍길동, 『조선 후기 향촌 사회 연구』(한국사연구원, 2021).
학술지 논문이면 두 낫표가 함께 나옵니다.
올바른 예: 김민수, 「향약의 운영과 지방 지배」, 『한국사학보』 45(2023), 77쪽.
논문 제목은 홑낫표, 학술지명은 겹낫표입니다. 이 관계가 뒤집힌 원고가 매우 흔합니다. 판단 기준은 하나입니다. 그 자체로 서가에 꽂히는 것이면 겹낫표, 그 안에 들어 있는 글이면 홑낫표입니다.
학과에 따라 낫표 대신 큰따옴표와 기울임을 쓰라고 정한 곳도 있습니다. 규정을 먼저 확인하고, 정해진 것이 없으면 낫표 방식이 국내 인문학의 표준에 가깝습니다.
인문학이 자주 인용하는 자료들
인문학 논문은 학술지 논문과 단행본 외의 자료를 다루는 비중이 큽니다. 자주 나오는 네 가지를 정리합니다.
고전과 사료
고전은 판본이 여럿이므로 어느 판본을 보았는지가 핵심 정보입니다. 원전 이름과 편·권·장 같은 내부 구분을 먼저 적고, 실제로 참조한 판본의 서지를 이어 적습니다. 내부 구분을 적어 두면 다른 판본을 가진 독자도 해당 대목을 찾을 수 있습니다.
번역서
저자는 원저자이고 역자는 제목 뒤에 적습니다. 원저의 출판 연도가 논의에 중요하면 함께 밝힙니다.
올바른 예: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오생근 옮김(나남, 2020), 143쪽.
기록물과 소장 자료
문서철 이름, 소장 기관, 청구 기호 또는 문서 번호를 갖춥니다. 독자가 같은 자료를 다시 찾아갈 수 있는 최소 정보가 기준입니다. 기록물은 표준 서지 요소가 없는 경우가 많으므로, 찾아가는 경로를 그대로 적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인터뷰와 구술 자료
구술사 연구라면 면담자, 피면담자, 면담 일자, 장소, 녹음 보관처를 적습니다. 다만 연구 윤리상 익명 처리가 필요한 경우가 많으므로 심의 조건을 먼저 확인하십시오.
참고문헌 목록의 배열
각주가 등장 순서를 따르는 것과 달리, 참고문헌 목록은 정렬됩니다. 국내 인문학 논문의 관행은 두 단계입니다.
- 자료 성격에 따라 묶습니다. 사료·원전을 앞에 두고 연구 문헌을 뒤에 두는 방식이 널리 쓰입니다. 논문에 따라 「1차 자료」와 「2차 자료」로 나누기도 합니다.
- 각 묶음 안에서 언어별로 정렬합니다. 국문(가나다) → 동양어 → 서양어(알파벳) 순서입니다.
이 2단 구조는 자연과학 논문에는 없는 인문학 고유의 관행입니다. 사료와 연구서를 한 줄에 섞어 놓으면 심사에서 바로 지적됩니다. 언어별 정렬과 원어 병기의 세부 규칙은 외국어 문헌 참고문헌 표기법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각주를 다는 실무 요령
체계를 알아도 실제 작업은 별개입니다. 세 가지만 지키면 편집이 훨씬 편해집니다.
- 각주는 반드시 자동 기능으로 넣습니다. 번호를 손으로 타이핑하면 각주 하나를 추가하는 순간 뒤 번호가 전부 어긋납니다. 삽입 도구가 붙여 주는 번호를 씁니다.
- 각주 번호는 문장 부호 뒤에 붙입니다. 마침표나 쉼표 다음에 번호가 옵니다.
- 축약 각주를 쓸 때는 첫 인용 위치를 기억해 둡니다. 완전 각주가 어디 있었는지 메모해 두면 편집 중에 첫 인용이 삭제되어 축약형만 남는 사고를 막을 수 있습니다.
세 번째가 실제로 자주 일어납니다. 초고에서 어떤 문단을 통째로 지웠는데 하필 그 안에 완전 각주가 있었다면, 남은 축약 각주들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각주 삽입의 구체적인 조작법은 논문 각주 다는 법에 정리돼 있습니다.
각주에 무엇까지 담을 수 있는가
인문학에서 각주가 살아남은 진짜 이유는 출처 표시 외의 기능 때문입니다. 각주는 본문의 흐름을 끊지 않으면서 논의를 한 겹 더 쌓는 자리입니다. 실제로 인문학 논문의 각주에는 네 종류가 섞여 있습니다.
- 출처 각주: 인용한 문헌의 서지를 밝힙니다. 가장 기본입니다.
- 내용 각주: 본문에 넣으면 곁가지가 되는 배경 설명이나 개념 정리를 담습니다.
- 대비 각주: 다른 견해나 반대 해석을 소개하고, 왜 그 견해를 택하지 않았는지 짧게 밝힙니다.
- 원문 각주: 번역해 인용한 대목의 원문을 그대로 병기합니다. 번역의 타당성을 독자가 판단할 수 있게 합니다.
다만 각주가 본문을 대신하면 안 됩니다. 흔한 지적이 「각주가 본문보다 길다」는 것입니다. 판단 기준은 단순합니다. 그 내용이 논증에 필요하면 본문으로 올리고, 없어도 논증이 성립하면 각주에 두고, 둘 다 아니면 지웁니다.
잘못된 예: 핵심 개념의 정의를 통째로 각주에 밀어 넣고 본문에서는 용어만 사용
올바른 예: 개념 정의는 본문에서 하고, 그 개념을 둘러싼 학계의 이견은 각주에서 소개
번역 인용에서 특히 조심할 것
인문학 논문은 외국어 문헌을 직접 번역해 인용하는 일이 잦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 표시가 빠지면 문제가 됩니다.
첫째, 번역이 자기 번역인지 기존 번역본을 옮긴 것인지 밝혀야 합니다. 기존 번역본을 썼다면 그 번역서를 인용하고 역자를 적습니다. 직접 옮겼다면 각주에 그 사실을 한 줄 밝히는 것이 관행입니다.
둘째, 번역문도 직접인용이면 따옴표 안에 둡니다. 번역했다는 이유로 따옴표를 빼고 자기 문장처럼 쓰면, 형식상 출처 표시가 있어도 내용상 경계가 흐려집니다.
잘못된 예: 푸코는 감시가 내면화된다고 보았다.(각주만 달고 원문 표현을 그대로 옮김)
올바른 예: 푸코는 「권력은 시선을 통해 작동한다」고 보았다.(각주에 서지와 원문 병기)
다른 양식과 비교하면
시카고 노트 방식은 다른 주요 양식과 성격이 뚜렷하게 갈립니다.
| 구분 | 시카고 노트 | APA | 번호식(IEEE·밴쿠버) |
|---|---|---|---|
| 본문 표시 | 각주 번호 | 저자-연도 괄호 | 번호 |
| 출처의 위치 | 페이지 아래 | 본문 괄호 안 | 논문 끝 목록 |
| 보충 설명 | 각주에 함께 가능 | 어려움 | 어려움 |
| 목록 배열 | 가나다·알파벳순 | 가나다·알파벳순 | 등장 순서 |
| 쪽수 표시 | 거의 항상 | 직접인용에만 | 선택적 |
가장 큰 차이는 마지막 줄입니다. 인문학은 거의 모든 각주에 쪽수를 적습니다. 특정 대목의 해석이 논증의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네 양식의 개괄적 비교는 논문 인용 표기법 비교에, 인용 체계 전반의 지도는 참고문헌 작성법 완전 정복에 정리돼 있습니다.
각주를 많이 쓰는 또 다른 분야가 법학입니다. 판례와 법령을 다루는 방식은 인문학과 또 달라서, 법학 논문 작성법에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인문학 특유의 문체와 시제 문제는 학술적 글쓰기 가이드에서 다룹니다.
제출 전 점검표
- 각주와 참고문헌의 저자명 순서가 각각 다르게 되어 있는가
- 각주는 쉼표로, 참고문헌은 마침표로 요소를 끊었는가
- 각주의 출판 정보가 괄호 안에 있고, 참고문헌에는 괄호가 없는가
- 각주 쪽수는 인용한 쪽, 참고문헌 쪽수는 논문 전체 범위인가
- 첫 인용만 완전 각주이고 이후는 축약 각주인가
- 겹낫표와 홑낫표를 출판물과 그 안의 글로 구분했는가
- 참고문헌이 사료와 연구 문헌으로 나뉘고 각 묶음이 언어별로 정렬됐는가
- 각주 번호가 자동 기능으로 매겨져 있는가
자주 묻는 질문
각주와 미주 중 무엇을 써야 하나요
학과 지침을 따릅니다. 지침이 없으면 각주를 권합니다. 인문학 논문은 각주에 보충 설명이 자주 들어가는데, 미주로 밀어 두면 독자가 그 설명을 읽지 않게 됩니다.
본문에 저자 이름을 쓰면 각주에도 또 써야 하나요
씁니다. 각주는 본문 문장과 독립적으로 완결된 출처 정보를 담아야 합니다. 본문에 「푸코는」이라고 썼더라도 각주에는 저자명을 포함한 서지를 그대로 적습니다.
참고문헌에 각주로만 언급한 자료도 넣나요
넣습니다. 각주에서 출처로 인용한 자료는 모두 참고문헌에 올립니다. 다만 개인적 교신처럼 독자가 찾아갈 수 없는 자료는 각주에만 두고 목록에는 넣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출판 도시를 적어야 하나요
최근 시카고 양식은 단행본에서 출판사만 적고 도시는 생략하는 쪽으로 정리됐습니다. 다만 국내 학술지와 학과 지침 중에는 여전히 도시를 요구하는 곳이 있으므로 규정을 먼저 확인하고 논문 전체에서 통일하십시오.
각주가 너무 많으면 감점되나요
개수 자체로 감점되지는 않습니다. 인문학 논문은 한 쪽에 각주가 예닐곱 개 달리는 일이 흔합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개수가 아니라 근거 없는 문장이 남아 있는 경우와 반대로 각주가 본문의 논증을 대신하는 경우입니다. 인용한 곳에는 빠짐없이 달되, 논증의 핵심은 본문에 두십시오.
정리
시카고 노트 방식의 핵심은 하나의 원리에서 나옵니다. 각주는 읽는 자리에서 바로 확인시키는 장치이고, 참고문헌은 찾아보는 자리에서 정렬해 주는 장치입니다. 목적이 다르므로 형식이 다릅니다. 각주는 자연스러운 이름 순서와 쉼표와 괄호로 문장처럼 흐르고, 참고문헌은 성을 앞으로 도치하고 마침표로 끊어 목록처럼 정렬됩니다. 여기에 완전 각주와 축약 각주의 구분, 겹낫표와 홑낫표의 구분, 사료와 연구 문헌의 분리까지 더하면 인문학 논문의 출처 체계는 완성됩니다.
